조합소식

故 차봉천 초대위원장 7주기 추모식

  • [등록일]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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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3권 보장을 위해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위해서, 매일 아침 일어나 천지신명께 기도하고 하루의 활동을 시작한다” -차봉천, 2002년 5월 연가파업 투쟁발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4일 오후 고 차봉천 초대위원장의 7주기를 맞아 고인이 안치된 마석 모란공원에서 추모식을 거행하고 공무원노조의 초석을 다진 고인의 희생과 뜻을 기렸다.

 

이날 추모식은 오는 9월 19일 임금피크제 반대, 성과급제 폐지, 퇴출제 저지, 10대 과제 쟁취 총력투쟁 선포대회를 앞두고 공무원노조의 더 큰 단결과 투쟁 결의를 다지기 위한 의미도 더해졌다.

 

김중남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공무원노조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초창기 직장협의회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때 만큼 힘들었겠나. 우리가 단결하고 힘을 모으겠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어 위원장 동지께서 만들어준 공무원노조의 길을 가도록 하겠다”면서 “하늘에서 지켜봐주시고, 여기 함께 한 본부장들과 함께 차 위원장의 뜻을 잊지 않게 해주시고, 기쁜 소식 들고 꼭 찾아 뵙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고인의 부인인 황하영 여사는 “바쁘신 중에도 매년 찾아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올해는 특별히 차 위원장 외손녀가 태어났다. 하늘에서나마 기뻐하실 것 같다”면서 “차 위원장은 하늘에서도 공무원노조의 앞날을 환하게 비춰주시리라 믿고 있다”고 인사했다.

 

 



이날 7주기 추모식에는 사무처 임원들과 강원, 경기, 서울, 인천, 충북 등 본부장 및 조합원들도 참석했으며, 특히, 최호인 남양주직협회장과 지난달 28일 신임 위원장으로 당선된 안상영 남양주공무원노동조합 당선자도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렸다.

 

추모식이 끝난 후, 공무원노조는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여사의 묘역을 참배했다.





故 차봉천 (당시 나이 62세 : 1947년~2008년)


1947년 2월 21일 경남 남해 고현면 갈화리 출생

1974년 부산시 공무원(행정서기)으로 공무원 생활 시작

1981년 3월 국회 공무원 임용시험(행정7급) 합격 근무

1998년 국회사무처공무원직장협의회 설립 준비위원장

2000년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발전연구회 공동대표 겸 사무총장

2000년 공무원연금법 개악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상임대표

2001년 3월 24일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 위원장 

2001년 5월 7일 공무원·교수 노동기본권쟁취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2001년 7월 공무원노조 추진관련 체포영장 발부, 명동성당 농성

2001년 12월 26일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체포·연행

2002년 3월 23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출범

2002년 3월 26일 노조 출범관련 체포영장 발부

2002년 4월 3일 초대위원장 당선 및 인천 산곡성당 및 명동성동 농성

2002년 10월 3일 공무원노조 결성 및 연가파업 주도 혐의로 체포, 구속수감

2003년 공공부문노조연대회의 공동대표

2003년 민주노동당 입당, 강남갑지구당 위원장

2004년 4월 15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강남갑 출마

2004년 12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일만연대 활동

2006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지도위원

2006년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임원-대의원 직선제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8년 9월 4일 22시 18분 운명

2008년 9월 8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장.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 안장

 

[동지의 삶과 죽음]

 

故 차봉천 초대위원장은 1947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하였으며, 1974년 부산시에서 공무원을 시작했다. 1981년부터 국회사무처로 옮겨 일을 했는데, 승진과 개인의 영달에 연연하지 않고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에 앞장섰다. 동료들로부터 잘못된 일은 못 참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단칼’과 ‘차폴레옹’이었다.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굴종과 굴욕의 시대를 끝내고 진정으로 국민의 공무원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공무원노동자들의 권리와 단결을 위해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발전연구회,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치열하게 실천하였다. 이러한 헌신적 투쟁과정에서 정부의 극심한 탄압이 있었다. 고인은 암 투병 중 말기에 이르러서도 노동자와 민중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중단하지 않고 활동하다가 2008년 9월 4일 22시 18분 동지들에게 남은 투쟁을 맡겨둔 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잠들었다.